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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STER KEATON

포토로그 마이가든





잠수 단상

 

 



1.

 영국의 평론가 John Ruskin은 자신의 일이 있을 때는 마치 죽은 사람처럼 행동했습니다. 다음과 같은 글귀를 미리 인쇄해 놓고 그에게 편지가 오면 이 인쇄문을 회답으로 보내곤 했습니다.

 러스킨은 현재 매우 중요한 일에 착수하고 있사오니

방문이나 서신에 관해서는 이제부터 두 달 동안은 소생이

이 세상에 없는 것으로 인정해주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저는 제가 지금 '매우 중요한' 일을 하고 있는지 확신이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저는 러스킨이 아니기도 합니다. 멍청한 당나귀가 귀여운 강아지 흉내를 내려고 주인의 손을 핥다가 죽도록 얻어터졌다는 이솝우화의 지혜를 제가 어찌 잊겠습니다. 깜냥도 안 되는 제가 저런 식의 선포를 한다면 그것은 바로, 허영 주머니에서 흘러나온 '건방짐'일 테지요.

2.

 그래서 누구에게는 '공부 좀 하려고' 라며 얼버무리거나 어떤 이에게는 '수도승처럼 공부 할거야' 라며 거창하게 말했던 기억이 납니다. 어림잡아 다섯 명은 될겁니다. 그것으로 충분하리라고 생각했습니다. 번개보다 빠른 게 있다면, 물론 '복수'가 정답이겠지만 '소문' 역시 만만치 않으니까요. '말'이 빛보다 빠르다는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진실입니다.

 저는 몹시 두려웠습니다. 이 오래된 계획이 제 안의 또 다른 악의나 오만함과 결합하는 것이 겁이 났습니다. 뿐만 아니라 제 입을 떠난 '말'들이 누군가의 정신과 부딪치며 생기는 곡해도 싫었습니다. '열정'이나 '공부'라는 말은 자칫 그 본래의 뜻과 달리 듣는 이에게는 화려하고 거창하게 비춰지기 십상입니다. 

저는 배우고 있습니다. 

 제 능력으로는 이 문장보다 더 단백하고 겸손한 표현을 찾을 수 없습니다. 만약 이 말에서 조차 나쁜 욕망을 발견한다면 그것은 제 지혜와 덕성이 부족한 탓입니다. 여러분 중 이보다 좋은 표현이 떠오르신다면, 그 것이 바로 제가 하고 싶은 말입니다.   

3.

 제가 오랜 침묵을 깨고 공연스레 변명을 하는 이유는 괴로움 때문입니다. 인연의 힘을 너무 쉽게 생각한 탓에 끊이지 않은 연락들이 저를 괴롭혔습니다. 명쾌하게 하지 않은 저의 잘못입니다. 오늘 또 저를 소환하는 몇몇의  연락들을 확인했을 때, 이 글을 쓰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이 글을 통해 서로 간, 멀어진 이해의 폭이 가까워지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현명하고 사려 깊은 저의 모든 인연이 이 조악한 글에서 제 마음을 일별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이런 상상을 해봅니다. 우리 모두가 넒은 광장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풍선 불기 놀이를 하는 겁니다. 서로에게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피해를 주지 않고 오직 즐거움과 기쁨으로 가득한 오후를 상상하고 있자면 저절로 행복해집니다.

 하지만 세상은 야속합니다. 말도 못할 고통이 가득하고 타인에 대한 적개심으로 서로를 으르렁 거립니다.  결국, 의도야 어떻든 누군가를 해치고 맙니다. 어떤 식으로든 말입니다.   

 그래서 꼭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하고 있는 이 몇 마디는 제가 저지른 어리석음과 잘못에 대한 반성이자 의무이며 책임입니다. 이 글 속에서 저의 이기심이나 자만심은 조금도 넣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 하고 있습니다. 맹세컨대 제 노력에 조금의 거짓이 있다면 손목을 자르겠습니다.

4.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야말로 진실로 힘이 필요합니다. 

 이 곳은 생각보다 훨씬 어둡고 축축합니다. 그러니 제가 얼마나 외로운 처지 놓여있는지 말을 하지 않아도 충분히 아실겁니다. 제 입으로 말씀드리기 민망하지만, 저야말로 독려와 위로에 목말라 있습니다. 

제게 용기를 주세요. 

 당신이 만약에 하나님이 필요할 만큼 고통을 겪어 본 사람이라면, 그래서 살아간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함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저한테 이런 말씀을 해주세요.

"불행을 깨울까 조심이 걷되, 그것이 찾아 온다면 성숙한 자세로 받아들이렴. "

 당신이 만약에 지혜와 시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이런 말씀을 해주세요.

"거미는 아무도 없는 밤 동안, 한올한올 실을 뽑을 뿐이지만,

 아침이면 황금빛 이슬방울이 맺힌 훌륭한 집을 짓게 된단다. "

 당신이 만약에 필부필부라면, 이런 말씀을 해주세요. 평범함 속의 위대한 진리의 말을.

"힘내!"

 당신이 만약에 지나치게 영리해서 삶의 비밀을 알고 있거나 세상을 향해 분노와 조롱으로 꾸짖는 사람이라면, 저의 이 글 속에 나쁜 점을 찾아냈으리라 생각됩니다. 하지만 부탁드립니다. 오늘 만큼은 제게 이 말씀만 해주세요.

"파이팅!"

 당신이 만약에 젊은의 패기로 가득해, 이러한 글 속에서 고루함을 발견해 내고 교장 선생님의 설교쯤으로 치부하고 조롱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오늘만큼은 참아주세요.

 당신이 만약에 저와의 악연에 의해 저를 증오하거나 보기 껄끄러워 사람이라면, 혹은 알 수 없는 질투심이나 적개심으로 서로에게 칼날을 휘둘렀던 경험이 있었던 사람이라면, 제가 용기를 바라는 것이 염치가 없는 짓일 겁니다. 그렇다면.

 한 순간이라도 저를 용서해주세요. 

 당신이 만약에 인연의 깊이나 민망함 등 여러 이유로 인해 제게 공개적으로 어떠한 언급도 할 수 없는 사람이라면,

마음 속으로 저를 위해 주세요.

5.

 세속적이 비유가 적절할지 모르겠지만, 언제가 키높이 깔창의 위력에 감탄한 적이 있었습니다. 도대체 손바닥만한 실리콘 덩어리가 뭐라고 남자들에게 자심감과 당당함을 심어 줄까? 아무리 생각해도 신기하기만 했습니다.

 하물며, 물질조차 사람의 마음을 그렇게 큰폭으로 움직일 수 있는데, 당신의 따듯한 말 한 마디의 위력은 얼마나 커다랗고 신비로울까요?

PS.

 위의 그림은 오치균 화백의 [시험공부]라는 작품입니다. 부디 저를 생각하신다면 저 그림을 흘겨 보지 말아주셨으면 합니다. 여러분에게는 아무 의미 없는 그림일지 모릅니다. 누군가는 분명 이 그림이 화려한 광고 이미지나 필통에 그려는 예쁜 디자인, 심지어 화장실에 걸려 있는 장식품보다 특별하지 않다고 느낄 겁니다. 

 하지만 저한테는, 지금 이 순간, 이 작품보다 위안이 되는 경험은 없습니다. 저는 그 어떤 말들보다도 이 그림과 의미의 차원에서 뒤엉켜 있습니다. 제가 통과해 온 삶이 저 그림과 만났고 불꽃이 튀고 있습니다. 제 안의 모든 의지와 위로가 저 그림 속에서 거울처럼 저를 비추고 있습니다. 저 그림을 유심히 봐주기를 바랍니다. 미술 작품의 위대함과 아름다움이 과연 어디에 있느냐? 라는 중요한 질문에 대한 대답이기도 합니다. 이 작품과 저의 만남을 제가 그러하듯, 여러분도 결코 가벼이 여기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 그림을 보고 저를 조금이라도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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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iron 2009/10/28 21:15 # 삭제 답글

    읽다가 충동적으로 링크를 걸었습니다.
    죄송합니다 @@

    아무튼 "힘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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